문득 일요일 아침에 드는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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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석의 피플웨어에 올라온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적어봅니다.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글 중에 인용된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을 때 - 바보의 벽" 이라는 글을 읽다가 떠오르는 일이 있어서요

중학교때 3학년에 올라갔을 때 무척이나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제가 사춘기를 겪고 있으면서 더 내성적이 되면 어떻하나 걱정이 되었는지 어머니께서 담임 선생님께 저의 성격을 고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의논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 미술과목을 맡고 계셨고 틈틈히 조각를 하시면서 작품활동을 하시던 담임 선생님은 어느날 나를 부르시더니 당신이 일주일 마다 하나의 주제를 줄테니 원고지 10매 정도로 글짓기를 해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때는 무지 귀찮았지만 묵묵히 선생님의 또다른 숙제라고 생각하고 1학기 내내 그렇게 글짓기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께선 저에게 엄청한 특별대우를 나한테 해주신 거죠.

선생님이 주신 여러 주제들이 있지만 지금 기억나는 주제 중 하나는 "상처" 입니다. 그때 내가 쓴 글 하나하나는 다  기억나진 않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상처라는 것은 의사가 고쳐주는 것도 아니고 약이 고쳐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몸 스스로 이겨내어야만 고칠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당시 선생님은 이 글을 읽어보시고 아주 잘 쓴 글이라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 칭찬이 얼마나 좋았던지 지겨워하지 않고 글짓기 숙제를 열심히 했고 글쓰는 재미를 알게 된거죠. 당시 내가 글을 아주 잘썼다고 자랑할려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그 일로 인해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삼년내내 일기를 쓰게 된 동기가 되기도 했고, 믿기 힘들겠지만 끄적끄적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지금 내 모습을 아시는 분은 상상이나 하실런지) 다시 말하면 내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왜 글을 쓰는 것이 즐거운 지 등을 스스로 느끼게 해주고 동기를 부여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걸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한 한기 내내 꾸준히 글을 쓰도록 챙겨주셨죠.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교 1,2학년 담임이 국어선생님이셨지만 결코 나에게 이런 재미와 흥미를 알게 해주시지는 못하셨죠.

이 글을 쓰다보니 문득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생각이 나네요. 글짓기 숙제를 해갔는데 저는 "참새" 라는 제목으로 동시를 썼는데. 기억나는 구절은 참새는 짹짹 우는 것이 아니라 참새는 즐겁게 짹짹 웃고 즐겁게 노래하고 있다 라는 구절인데 그 글을 보신 담임 선생님의 첫마디는 "누가 대신 써줬니?" 였습니다. 그 말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질문은 내가 쓴 동시가 잘 쓰여졌다는 걸 의미하는 동시에 너가 썻을리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였죠. 칭찬받기는 커녕 되려 혼난거니까요. 물론 그 이후 나는 글짓기 숙제를 제대로 해갔을리가 없죠. 당시 담임 선생님은 특별히 학교에서 과학을 담당하시던 분이셨는데 매우 젊고 의욕넘치고 똑똑하기로 학부모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하시던 분이셨고 최근 교장을 거쳐  퇴임하셨다는 얘기를 동창들로부터 건너들었습니다. 하지만 난 그 분을  어린아이의 맘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못된 어른, 선생님으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주는 말을 했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가장 최선이라고 믿는 방식,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편협된 삶의 방식에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상처주고 윽박지르고 화낸 못된 어른, 편협된 아버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네요. 

여전히 아이들이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느끼게 할 수 있는 부모, 멘토로써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일요일 아침 몇몇 글을 읽다가 포스팅까지 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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